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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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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코올중독치료 병원을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번째로 EMS에 실려 예사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나는 정말 알코올중독자인가? 

며칠간은 병원생활을 하는 둥 마는 둥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교육을 통해 시간이 흘러가면서 과거를 진실로 검토해 보았습니다.

술을 마시던 지난날에 술로 인해 사건, 사고가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나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알코올중독이란 질환은 지금 내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내가 어떤 상태의 사람인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의 병에 대해 매일매일 인정하고 검토하는데 실패한다면 술은 틀림없이 나를 찾아와서 죽일 것입니다.

이 알코올중독이란 질병에는 매일 매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외는 그 어떤 것도 치료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직 하루하루 단주의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지금의 아내는 나의 구세주입니다. 맞선을 다섯 번 보았지만 다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은 홧김에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면서 또 병나발을 불었습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없습니다.

맞선을 보고 퇴짜를 맞은 기분을 술로 달래면서 운전대를 잡았는데 차가 뒹굴며 전복 사고가 났습니다.

차는 폐차가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정말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청댐에 가서 ‘나와 결혼을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지금 비록 가진 것은 없어서 나와 결혼을 하면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아내를 붙잡았습니다.

나는 20살부터 26살까지 서울에서 떡 기술을 배웠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떡집과 방앗간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여성들과의 맞선에서 퇴짜를 여러 번 맞았기에 결혼을 허락한 지금의 아내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28살에 아내와 결혼을 해서 아들과 딸을 낳고 키우며 지금의 떡 가게를 운영하며 제법 많은 돈을 벌어가면서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파트와 상가도 장만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탄할 줄만 알았던 나의 인생에 어느 순간부터 먹구름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나이 50세가 되면서 젊어서부터 마시던 술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서 무엇 하나 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져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수면제 20알을 술과 함께 먹었는데 나중에는 아무런 기억도 없습니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기절을 해버렸는데 아내와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이모님과 몇 분이 놀라서 나를 병원에 후송시켰습니다.

눈을 떠 보니 기저귀를 차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울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아내 손을 잡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6년에는 3전4기 도전 끝에 담배를 끓었습니다. 아내도 기뻐했습니다.

당시 아내가 하는 말이 건강에도 안 좋은 담배를 끓었으니 이제는 진정으로 술을 끊어보자고 해서 아내와 굳게 단주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담배를 끓은 후에도 나의 생각과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하루 종일 술에 꽂혀서 소주병을 찾아다니는 폐인이 되어서 수많은 슬픈 사연을 만들게 됩니다.

 

며칠간 곡기는 입에 안대고 술만 마시다보니 제대로 대변이 나오지 않아서 변비와 설사를 교대로 고통을 받다보니 충북대 병원 응급실을 가게 되었고 수시로 블랙아웃이 되었습니다.

가게일은 내버려두고 술병만 잡고 헤매는 나를 영양제 주사라도 맞힌 다고해서 응급실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습니다.

구정 대목은 떡집이 제일 바쁜데 나는 또 술에 취해서 뻗어버렸습니다. 아내는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나하고 결혼해 주면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만은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맹서를 했던 대청댐의 프로 포즈 애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정말 내가 미친것일까? 술을 정말 끓고 싶었습니다. 또 다짐과 맹세를 하고 술을 안마시고 몇 달이 지났지만, 어느 순간 또 손에는 술병이 쥐어져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내 스스로도 늘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새벽녘에 가게 문을 열면서 해장술을 마셔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주문받은 것을 잊어버려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도망을 갔습니다. 결국 난장판이 된 것을 수습하는 것은 결국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런 현실도 술에 취해서 당시에는 도통 몰랐습니다.

아내와 딸이 울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술병을 놓지 못하는 내가 정말 미쳤구나! 생각하고 오백만원을 들고 절에 가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한번 씩 일곱 번을 정성스럽게 아내와 기도를 올려야 하는데 다섯 번째 날 기도를 하러 절에 가야하는데 술에 취해서 절에 가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야!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시면서 부처님께 올린 약수 물을 조금 마셔보라고 해서 마셔보았지만 모든 방법이 아무런 소용없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어버린 3일간의 시간들 속에서 가게일은 내 팽개치고 술을 사다가 여기저기 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눈만 뜨면 숨겨놓은 술을 찾아다니는 신세였습니다.

마침내 아내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알코올중독치료병원인 예사랑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혼자 결정할 수 없어 막내처남 주선으로 강제 입원시켰습니다.

시장상인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EMS 차로 모여 들었습니다. 차에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나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왜 내가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가족들에게 원망과 분노뿐이었습니다.

 

첫 번째 병원생활은 더디게 흘러갔습니다. 50일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술은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입원생활동안은 가게 문도 함께 닫았습니다.

다시 문을 열고 영업을 하면 잘 될까? 하는 불안감과 주위 시선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며칠간은 가게 안에서 일만 하고 밖으로는 돌아다니지도 못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입원했던 사실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습니다.

술을 마시면 가족과 영업에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기에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다짐을 하고 가게일과 가정에 충실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내가 마시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쌩’ 단주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단주생활이 1년이 지나면서 술에 대한 갈망감이 자꾸만 올라 왔습니다.

시간이 이만큼 지났으니 이제는 한 잔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조절망상이 괴롭히기 시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한데 ‘한 잔만’ 허락을 받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마시고 싶다고 생각이 꽂히니 아내 모르게 몰래 숨어서 마시게 되었고 한 동안은 음주조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자신감에 찬 나머지 아내한테 보란 듯이 한 병이면 한 병, 두병이면 두병 가게일도 척척하면서 조절음주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조절망상은 오래 가지를 못했습니다.

추석 대목 며칠 앞두고 또 다시 나는 제대로 뻗었습니다.

아내가 하는 말 

‘야! 이 인간아 내가 분명히 마시지 말라고 했지’ 않았냐고 했습니다.

원장님께서 한 번 재발을 해서 마시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다고 하던 것을 기억해낸 아내의 잔소리 속에서 몇 달이 그럭저럭 지났습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하루하루 손에 술병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가게일은 뒷전이고 또 술을 찾아다니는 폐인이 되었습니다.

술을 사다 숨겨놓으면 아내는 잘도 찾아서 술을 하수구에 따라버리고는 빈 병을 큰 대야에 모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술이 아까우면서도 화가 났습니다.

술을 사러가지 못하도록 아내와 딸이 그리고 이모님이 보초를 섰습니다. 내가 정말 미친것일까?

아내와 딸은 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몸은 계속 술을 원했습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술만 있으면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술이 깨어 술을 찾아 밖에 나아가려고 하니 문이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밖에서 술을 사러가지 못하게 잠가 놓았던 것입니다.

문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습니다. 발로 문을 꽝꽝 찼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문 밖에는 EMS차가 또 와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나를 붙잡고 차에 태웠습니다.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뒤에서 떠미는 딸아이에게 손찌검을 할 뻔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빠! 이번에는 꼭 치료를 잘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시라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병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2.20.일!

그래 이왕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것 병원생활 열심히 해서 술을 한 번 끓어보자! 

이후로 첫 번째 입원할 때와는 다르게 병원치료프로그램을 정말 열심히 배워 나갔습니다. 

소교육장에서 ‘빅북’을 입원생활동안 수시로 읽어보았습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내와 딸이 면회를 왔습니다.

이제 퇴원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지만 이번에는 제가 반대를 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퇴원을 하면 분명히 얼마 못가서 재발할 것 같다고 하던 원장님의 말씀을 덧 부쳐 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이번에는 병원생활을 충분히 하고 싶다고 아내와 딸을 설득했습니다.

기다리는 가족도 힘이 든다면 서도 내가 치료를 위해서 병원생활을 연장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아내와 딸이 승낙을 했습니다.

이어지는 입원생활 중에 원장님과 의미 있는 대화, 상담사님과의 정기적인 상담 그리고 복지과장님과 면담 등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병원생활을 충실하게 보람 있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입원생활 마지막이라는 굳은 각오로 내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만약 입원기간을 연장하지 않았다면 퇴원 후에 불안했을 것입니다.

나의 단주의 고향은 예사랑병원입니다.

두 번째로 시작된 5개월의 병원생활을 기쁨과 두려움 반을 가슴에 담고 마침내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 후 A.A.에 처음으로 참석한 단주모임은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참석하면서 나의 경험담을 용기 내어 발표를 했습니다.

내 자신을 진실로 돌아보니 토해 낼 것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발표를 하고 또 발표를 하니 자신감도 생기면서 수치심도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퇴원 후 모임에 참석을 해서 1년간 꾸준하게 자신의 문제점을 토해내라고 하신 상담사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입원일인 2018.2.20과 퇴원일인 2018.7.17.일 이후 지금까지 4년 동안 단주를 하면서 꾸준하게 회복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나에게는 혼자 회복할 힘이 전혀 없었지만 A.A. 모임에 참석하면서 멤버 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들을수록 지난 날 나의 술 마시던 행동과 똑같았음을 매번 깨닫고는 현재는 단주의 길을 멤버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이제 술 없이 살아가는 삶을 A.A.에서 배우니 A.A. 약속 중에서 “새로운 자유와 새로운 행복”을 알게 될 것이라는 글귀가 마음속에 파고 듭니다.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건강을 되찾으니 하루 종일 컨디션은 최상입니다.

이젠 아침에 술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일어나는 것과 해장술을 마시지 않다보니 열등감이 사라졌습니다.

항상 맨 정신으로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는 떡 주문 받은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하는 실수를 하지 않아서 기쁩니다.

새벽녘에 차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식사를 제때에 하다 보니 웃음꽃이 핍니다.

아내와 딸은 지난 3월16일에 나의 55번째 생일날에 편지를 써서 전해 주었습니다. 너무도 고맙다고 하면서 단주생활 열심히 하는 것이 가족들 눈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술 하나 안 먹는 것이 가족에게 진정으로 보상이 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날 나 한사람의 음주로 인해 가족들에게 끼친 해가 너무도 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단주생활이 시작에 불과한데 아내와 딸이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약 내가 다시 재발을 했다면 내 삶을 아주 비참해졌을 것입니다. 이젠 단주생활 안에서 나의 삶은 매일 매일 조금씩 성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A.A.12단계를 단주생활에 적용하라는 상담사님의 말씀을 이제는 또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알코올중독자가 되기 위해 항상 사랑과 관용 그리고 용서를 배우면서 분노심이 없는 생활을 위해 오늘 하루도 겸손하게 자신을 검토해봅니다.

몇몇 친분이 있는 멤버 선생님들과 카톡을 주고받는 일상도 너무 기쁩니다.

마침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신께서 해주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알코올중독자 창신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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