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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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07-11
  • 조회352

 저는 2년이란 단주 생활을 그럭저럭 힘들게 이어오던 중에 또 재발하여 지금 예사랑병원에 입원하여 재활 치료 중인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댄 것은 중학교 2학년 중퇴 후에 지방 소재 직물 공장에 취직을 하고 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근무 조건이 주, 2교대 근무 형태였는데 나이가 어려서인지 아니면 환경에 잘 적응이 안 되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야근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면 통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잠을 잘 자야 다음날 근무에 지장이 없다는 생각과 그런 고민 끝에 주임님에게 사정을 털어놓으니 그분의 방법이라는 것이 잠이 안 올 때는 소주를 맥주 잔으로 한 컵 마시면 잠이 잘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망설이고 안 마셨지만, 며칠 후 난생 처음으로 마신 술이 당장 효과를 발휘해서 깊은 잠이 아주 잘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마셨던 소주 첫 잔이 지금의 알코올중독자로 만들 줄은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술 마시는 습관은 늘 야근이 끝나면 언제나 동료들이든 혼자이든 술을 마시는 것으로 변했고 주말엔 여공들과 어울려 술과 돈 쓰는 일로 하루살이처럼 그런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10대 중반에 배운 음주와 음주 후 나쁜 행동이 20대가 되면서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로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술 문제가 서서히 심해지면서 자주 블랙아웃이 오곤 하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이 23세에 저보다 7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여 지금의 큰딸을 낳았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제가 술 먹고 하는 모든 행동을 큰 나무람 없이 잘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술버릇은 도를 넘어서 잦은 외박과 외도가 반복되었고, 그런 저런 사연이 겹치다 보니 3년이란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에도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이혼의 그 충격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핑계로 삼아서 딸아이를 부모님께 떠맡겨 놓은 채 객지를 떠돌며 술과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온갖 술 취한 뒤의 행패 등으로 경찰서 유치장 등등을 전전하며 돈이 생기면 모텔이 술 먹기 딱 좋은 저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이런 타락한 이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님들이 이번에 베트남 신부를 얻어 살아보라고 하도 조르고 안달을 하시기에 강요에 못 이겨 지금의 둘째 딸아이인 애 엄마를 만났습니다.

베트남 신부는 저보다 11살이나 어린 나이라서 그랬는지 여러 가지 사고방식과 또 다른 나라 사람이라 문화적인 차이도 많았습니다.

우선 언어적인 차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다투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때마다 저는 예전보다 더 많은 과음과 외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결혼도 얼마 못가서 파경을 맞고 저는 더 끝없이 술 마시고 망가지는 밑바닥으로 추락을 했습니다.

술 마시는 횟수와 정도가 심해져서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을 밤낮으로 술만 마시면서 모텔 밖으로는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술만 밤낮으로 마셔대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들어와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술을 외상으로 마시고 그것도 안 되면 구걸을 하면서까지 생긴 돈으로 술을 사서 먹었습니다.

이 정도까지 타락하는 저의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제 나이 35세 때에 대전 소재 00알코올 병원에 입원을 시키셨습니다.

입원 후에 갑자기 술을 못 마시자 처음 1주일 동안 소위 진전섬망이란 금단증상을 것을 겪게 되었는데 환청, 환시, 환촉이란 것이 동시에 몰려와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침상에 손과 발이 묶인 채로 3일을 보낸 후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진전섬망이 그토록 무서운 것이란 것을 그때 처절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병원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는데 비로소 제가 알코올중독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A.[알코올중독자들의 단주모임]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단주모임에 참석해 멤버들의 경험담을 듣다 보니 너무나도 저와 똑같아서 말문이 막혔고 세상에 어떻게 술 마시고 망가진 모습들이 어쩜 이렇게도 나랑 같을 수가 있을까 하면서 많이 당황을 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단주모임 참석과 교육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 하면서 3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퇴원 후 일을 병행하면서 단주모임에 충실히 다닌다고 했지만 2개월 만에 또 술을 입에 대고 재발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술독에 빠져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알코올중독치료를 받아보았지만 퇴원 후에는 먼저 번 보다 더 짧은 시간에 음주 재발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폐쇄병동에 입원을 하면 끝 모를 분노심과 자괴감이 들어서 오히려 정신건강에 안 좋은 역효과가 생겼습니다.

저에게 가장 치명적인 재발의 성격적인 결함은 교만함이었습니다.

얼마라도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면 이번에는 잘 될 거야 하는 조절음주망상이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악마처럼 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도 덜 깬 상태로 모임에 참석을 했다가 고마운 협심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빅북과 12단계와 12전통을 단주교육프로그램으로 단주교육을 진행하는 예사랑 병원을 소개 받고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석을 하면서 하루에 한 가지씩 나의 성격적 결함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6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해서 단주모임[A.A]에도 열심히 참석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다행히 충청권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단주모임이 활성화되어서 게으름만 피우지 않는다면 꾸준하게 참석할 횟수도 많았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가끔씩 찾아오는 음주 갈망감에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 활동과 모임 참석에 더욱 매진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날 무렵 혹시 이젠 음주 조절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절 망상이 찾아오다 보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또 첫 잔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나의 교만함이 또 하늘을 찌르다 보니 과거의 망가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 또 다시 모텔에 처박혀서 장취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무너졌다는 절망감과 자괴감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렇게 술에 빠져서 생활하던 중에 문득 큰 딸아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와 똑 같은 알코올중독이란 질병을 앓고 있는 이제 24살인 불쌍한 딸아입니다.

현재 딸은 또 다른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고 이 못난 아비인 저는 또 술독에 빠져서 세상 천지를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눈물만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다시 한 번 예사랑병원을 문을 두드리고 다시 입원을 했습니다.

지금 다시 시작된 병원생활이 부모님과 딸들에게 부끄럽고 내 자신도 몹시 고통스럽지만 이젠 인정할 것은 중독을 존재하는 그대로 인정하고 병원교육에 열심히 참석을 하기 시작했으며 단주생활에 다시 한 번 도전하려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끝도 없이 뻗치는 교만함입니다.

조금만 상황이 호전되면 과거는 깡그리 잊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필요 없는 미래의 걱정거리를 만듭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서는 그것을 핑계 삼아 또 조절 망상에 빠져서 음주 재발의 구렁텅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는 합니다.

술에 취하면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탓하고 나 자신을 업신여기며 두 딸에게는 술에 취한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한 체 신세타령만 합니다.

그리고는 울며불며 딸들에게 과도한 죄책감만을 갖고 끝없이 제 자신을 술 속으로 밀어 넣어서 정신과 육체를 깡그리 망가뜨리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알코올중독자가 가는 길은 이렇게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계속 마시다가 아무데나 쓰러져서 죽던지 아니면 완전히 미치던지 둘 중에 하나라고 교육시간에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주생활을 꾸준히 하면 몸과 정신도 회복이 되어서 일반인들처럼 행복한 여생을 누릴 수도 있다고들 합니다.

재발을 반복할 때마다 나는 이젠 도저히 단주가 불가능하나 보다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면 제 주위는 여러 알코올중독자들이 단주생활을 하면서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근무 중인 보호사님들도 그런 분들이고 또 모임에 가면 많은 분들이 현재 그런 단주생활과 활동들을 하고 계십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저는 입으로만 12단계 중에 1단계를 시인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1단계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함이 가득한 이유로 단주생활에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정직하게 시인하면서 술에게 완전 항복하는 자세로 병원생활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면회를 가서도 불필요한 말이나 허망한 약속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진리를 믿고 따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두 딸에게 아빠로서 보여줄 것은 오직 단주와 회복의 길을 걸어가는 저의 진정한 발걸음과 행동입니다.

병원교육시간에 메모를 한 단어를 여기에 옮겨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꾸준함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 옳다고 목표를 정했으면 내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세상이 무너져도 그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는 것만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이젠 깨달았습니다.

이젠 절망감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굳세고 꾸준하게 단주생활을 성공하도록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제 삶을 살아가렵니다.

지금까지 글로 표현한 저의 경험담을 이만 줄입니다.

고맙습니다

알코올중독자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