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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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11-13
  • 조회187

알코올전문병원에서 퇴원 후 3년 째 단주모임을 다니면서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알코올중독자 K입니다.

지금 소개되는 저의 회복경험담은 병원 입원생활중 자아성장 시간에 발표한 글입니다.

 

오늘이 알코올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제 겨우 한 달이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벌써 한 달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용기를 내어서 알코올병원에 입원하게 된 동기를 글로 써보려고 합니다.

40살이 넘은 지금까지 술과 함께 일상을 무위도식하며 살았습니다.

술에 의존하는 생활이 20년 넘어가다 보니 정신적으로 매우 나약해져서 외로움과 불쑥불쑥 찾아오는 우울감, 특히 낮아진 자존감으로 살아오면서 일자리도 구하기 싫어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끓고 오직 술만 찾아 헤매였습니다.

술에 곤죽이 되어서 완전히 무기력증에 빠지다 보니 문득문득 죽고 싶은 유혹이 강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술을 사다 마시고 취하면 졸다가 또 잠이 들다가 다시 눈을 뜨면 술을 마시고 식사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 잠이 깨어 일어나보니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참 이상한 환각상태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코올병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알코올중독이 많이 악화된 사람들이 겪는 진전섬망이란 것도 알게 됩니다.

환시와 환청 속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거지같이 인생 패배자로서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막상 죽으려고 하다 보니 어떻게 죽어야 잘 죽나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

차 안에 번개탄을 피울까?

이런저런 죽을 방법을 찾던 중에 한동안 잊었던 과거가 비참하게 떠올랐습니다.

내가 20대 때 평소 친구처럼 대해 주셨던 외삼촌이 끈으로 목을 매달고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외삼촌 모습이 강렬하게 떠오르자 끈으로 목을 매기로 하고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거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등을 보니 나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등이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싶어서 끈을 그곳에 묶고 나서 목을 올가미 줄에 건 다음에 술에 취해서 그런지 별로 두려움도 못 느끼고 올라서 있던 의자를 걷어찼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등이 달린 고정된 나무가 부실해서 부러지는 바람에 나는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등도 떨어져서 전구를 포함한 유리등 전체가 박살이 났습니다.

바닥에서 일어나 주위를 보니 굴러다니는 술병과 깨어져 어지럽게 뒹굴고 있는 유리 조각들을 포함한 지저분한 쓰레기들뿐이었습니다.

이런 더러운 풍경을 보니 정말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커터 칼로 왼쪽 팔목을 힘을 주어 그어댔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겁이 났는지 아주 깊게 상처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순간 나의 나약함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깨진 유리 조각을 주어서 이번에 오른쪽 손목에 힘을 주어서 깊게 그어댔습니다.

팔목에서 하얀 힘줄이 보였고 피도 상당한 양을 흘렸습니다.

훗날 치료 중에 알았지만, 동맥과 인대가 제대로 잘리지 않았고 그래서 피도 영화처럼 뿜어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피가 어느 정도 흘려야 죽는지를 잘 몰라서 지금처럼 계속 피를 흘리면 언젠가는 죽겠지 하면서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3시간이 흘렀지만 죽어지지는 않고 갑자기 아버지와 누나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죽으면 그들이 많이 울 것 같은 생각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것 같아서 119에 신고를 해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습니다.

 

응급실에 누워있을 때 의사선생님이 아버지께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것을 처음에는 심하게 반대를 하셨습니다.

괜히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면 멀쩡하던 사람도 이상해진다는 선입견이 매우 강하셔서 그랬고 특히 다른 환자들에게 아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누나와 내가 설득하여 일반정신병원이 아닌 알코올전문 병원을 찾았고 마침 누나 집 근처에 소재한 예사랑병원을 알게 되어서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한 첫날 보호실이라는 낯선 곳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손목을 그어대던 그때 나는 정말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서 지금 이 자리에 누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 상황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나는 죽고 싶은 생각보다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술만 마시는 공간에서 누가 날 구해주었으면 하는 몸부림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며칠 전 교육시간에 술로 인해 생긴 흉터는 일종의 축복이며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욕구가 심해질 때마다 그 흉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공부가 되면 그 흉터가 더 없는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정말로 보이기 싫은 양쪽 팔에 새겨진 선명한 흉터가 부끄럽다고 생각만 했는데 그런 교육내용을 듣다 보니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병원생활을 하면서도 어색한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부대끼다 보면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은 음주갈망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손목에 선명하게 생긴 축복의 흉터를 바라보면서 이 흉터가 왜 생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흉터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슴으로만 볼 수 있는 마음속의 흉터이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면서 오늘도 병원교육프로그램 참석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처가 치유되려면 상처 위에 흉터가 반드시 생겨야 하듯이 알코올중독자로서 단주의 길을 가려면 반드시 정직과 겸손이 동반된 자기 자신의 정직한 검토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습니다.

손목에 상처는 새살로 돋아난 흉터로 메꾸어 가지만 아직 내 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새살이 아직 돋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상처에도 반드시 새살이 돋아날 것이라는 진실을 믿고 또 믿습니다.

이제 한 달로 접어든 입원 생활중이지만, 퇴원을 서두르지 않고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뜻깊게 병동 생활을 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어설프게 나의 심경을 표현한 부족한 글을 끝까지 경청해 주신 환우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글을 줄입니다.

고맙습니다.

알코올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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